2026. 9. 23. 07:47ㆍindex_패션 & 소비 💃

에르메스 까레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그림은 누가 그린 거지?”
에르메스라고 하면 버킨이나 켈리 같은 가방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저는 오히려 까레를 볼 때 에르메스의 디자인 철학이 더 잘 보인다고 느낍니다.
똑같은 에르메스인데 어떤 까레는 고전적인 그림 같고, 어떤 것은 동화 속 한 장면 같고, 또 어떤 것은 현대미술 작품처럼 보이니까요.
이 모든 그림을 에르메스의 한 디자이너가 그리는 건 아니겠죠?
에르메스 까레의 역사에는 지금까지 150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참여해왔습니다.
그래서 까레를 하나씩 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스카프가 아니라 작은 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합니다.
1. 에르메스 까레는 1937년에 시작됐다
에르메스의 첫 실크 까레가 등장한 것은 1937년입니다.
첫 번째 디자인은 〈Jeu des Omnibus et Dames Blanches〉.
당시 에르메스가 마구용품과 가죽제품을 넘어 실크 스카프로 영역을 넓히면서 탄생한 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사각형의 실크 스카프가 시간이 지나면서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아이콘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에르메스 까레는 단순히 목에 두르는 스카프라기보다,
그림을 입는 액세서리
에 가까운 모습으로 발전했습니다.
2. 에르메스는 왜 까레에 아티스트를 참여시킬까?
여기서 에르메스의 방식이 재미있습니다.
에르메스는 새로운 까레를 만들 때 단순히 예쁜 패턴을 반복해서 찍어내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주제와 이야기를 정하고, 창작자가 그것을 자신만의 그림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같은 에르메스 까레라도 작가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동물을 그리고,
누군가는 식물을 그리고,
누군가는 여행과 역사에서 영감을 받고,
또 누군가는 아주 추상적인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에르메스가 판매하는 것은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작가의 시선이 담긴 하나의 이미지인 셈입니다.
3. 에르메스 까레 하면 떠오르는 작가, 로버트 달레




제가 에르메스 까레를 보면서 특히 재미있다고 느낀 작가가 로버트 달레(Robert Dallet)입니다.
그는 동물과 자연을 그리는 데 탁월했던 프랑스 출신 아티스트로, 에르메스와 오랫동안 협업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단순히 동물을 예쁘게 그린 것이 아닙니다.
표범의 움직임이나 새의 자세, 나뭇잎의 방향까지 굉장히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가 〈Jungle Love〉입니다.
정글 속 동물들이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화려한 스카프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하나의 일러스트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로버트 달레의 까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에르메스라서 산다”보다 “달레의 그림이라서 산다”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이게 까레 수집의 꽤 재미있는 지점입니다.
4. 우체부 출신 화가가 에르메스의 까레를 만들었다?





조금 의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 출신의 화가 케르밋 올리버(Kermit Oliver)입니다.
그는 일반적인 의미의 전업 럭셔리 브랜드 디자이너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우체국에서 일하면서 화가로 활동했고, 이후 에르메스와 협업하게 됩니다.
그의 작품에는 미국 텍사스의 자연과 역사, 동물, 원주민 문화 등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서 받은 영향이 녹아 있습니다.
프랑스 럭셔리 하우스 에르메스와 미국 텍사스의 화가.
처음 들으면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바로 그 차이가 흥미롭습니다.
에르메스가 자신의 스타일만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가진 세계를 까레라는 형식 안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5. 현대미술처럼 보이는 까레도 있다
에르메스 까레가 전통적인 일러스트만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현대미술 작가와의 협업도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그중에는 일본의 현대미술가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 같은 작가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까레가 단순한 패션 소품이라는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실크라는 소재 위에 회화와 사진,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 등 서로 다른 예술적 언어를 담아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에르메스 까레를 오래 보다 보면 재미있는 변화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어떤 색이 예쁘지?”
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이건 누가 디자인했지?”
를 찾아보게 됩니다.
6. 그리고 까레에는 매년 새로운 이야기가 들어간다
에르메스는 1987년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면서 연간 테마(Annual Theme)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매년 새로운 테마를 정하고 이를 다양한 창작 활동에 활용해왔습니다.
까레 역시 이러한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그래서 에르메스의 새로운 까레를 보면 단순히 시즌이 바뀌어서 새로운 패턴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해 에르메스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까레를 고르는 방법도 조금 달라집니다.
그냥 옷에 잘 어울리는 색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그림을 입고 싶은가?”
를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7. 한 장의 까레를 만드는 데도 꽤 긴 시간이 걸린다
까레의 화려한 그림만 보면 금방 만들어졌을 것 같지만 실제 제작 과정은 상당히 복잡합니다.
하나의 디자인을 완성하기까지 기획부터 제품화까지 약 2년이 걸릴 수 있고, 실크에 여러 색을 차례대로 인쇄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까레 한 장에는 수십 가지 색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장자리를 장인이 손으로 말아 마감합니다.
그래서 에르메스 까레를 가까이에서 보면 단순히 화려한 색깔의 스카프가 아니라,
그림 + 색채 + 인쇄 기술 + 장인의 마감
이 모두 들어간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 그래서 까레를 볼 때 작가 이름을 한번 찾아보게 된다
저는 이 부분이 에르메스 까레의 가장 재미있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명품을 좋아하다 보면 어느 순간 브랜드 로고보다 디자인 자체가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에르메스 까레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에르메스 스카프네.”
라고 생각했다면,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된 뒤에는
“이건 로버트 달레 스타일 같은데?”
“이 작가는 색을 굉장히 독특하게 쓰네.”
하고 보게 됩니다.
그리고 빈티지 까레를 고를 때는 디자인명과 작가명, 출시 시기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재미있는 공부가 됩니다.
스카프 한 장의 역사가 생기는 거죠.


💡 제가 까레를 고른다면
만약 처음 에르메스 까레를 구매한다면 저는 단순히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인을 고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내가 10년 후에도 이 그림을 보고 싶을까?”를 먼저 볼 것 같아요.
유행하는 색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브랜드 로고보다 내가 마음에 드는 작가.
그리고 옷장에 있는 옷과 잘 어울리는 색.
이 세 가지가 맞으면 오래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저는 처음을 모노톤으로 시작했습니다. 화이트, 블랙 조합은 어느 착장에나 어울리니까요.
또한 반다나무늬도 추천드립니다. 반다나는 실패가 없는 아이템이죠.
특히 까레는 가방처럼 한 가지 용도로만 사용하는 물건도 아닙니다.
목에 두를 수도 있고, 가방에 묶을 수도 있고, 액자에 넣어 장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라면 패션과 인테리어 사이를 오가는 작은 아트 피스처럼 즐길 수도 있습니다.


마무리|에르메스 까레가 특별한 이유
에르메스 까레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비싼 실크를 사용해서가 아닙니다.
1937년 시작된 까레의 역사 안에 수많은 창작자의 그림과 에르메스의 제작 기술이 함께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아티스트와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추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에르메스 까레를 보게 된다면 가격표나 색깔만 보지 말고 한 번 뒤집어 보세요.
그리고 가장자리의 작은 서명과 디자인명을 찾아보세요.
“이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
그 질문 하나로 평범한 명품 스카프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어쩌면 에르메스 까레의 진짜 매력은
‘에르메스’라는 이름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한 사람의 그림을 발견하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index_패션 & 소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소우소우(SOU・SOU)는 어떻게 브랜드 하나를 ‘마을’로 만들었을까|교토에서 발견한 브랜드 전략 (1) | 2026.09.22 |
|---|---|
| 막스마라 라벨 보는 법|중고·구매대행 전 확인할 6가지 (0) | 2026.09.21 |
| 배럴진, 왜 갑자기 다들 입을까|유래부터 유니클로·셀린느까지 (0) | 2026.09.20 |
| 샤넬 시즌백·공방백·크루즈 컬렉션, 언제부터 생긴 개념일까 (0) | 2026.09.19 |
| 알로 요가는 왜 이렇게 비싼데 잘 팔릴까|'요가복계의 에르메스'가 된 이유 (0) | 2026.09.18 |